고려 거란 전쟁, 같은 말로 여요 전쟁이라고 부른다.
요즘 방송(KBS2)에서도 주말 대하사극으로
방영되고 있다.
고려 거란 전쟁의 과정
고려 거란 전쟁은, 3차에 걸쳐 발생했으며
한국의 역사에 큰 충격과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 (1차) 993년, 소손녕의 침입
압록강 부근의 여진으로부터 거란이 고려를 침입할 거라는
통보가 있더니, 소손녕의 거란군이 고려를 침략해왔다.
당시, 고려에서는 서희, 박양유 등을 보내어 방어를 했다.
이 때, 항복론과 할지론(항복 + 땅 나눠주기) 이 있었으며,
할지론이 우세하였으나 서희 등이 항전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서희와 소손녕의 담판 자리가 마련된다.
담판의 결과는,
고려는 송나라의 관계를 단절하고, 요와 교류를 하는 것!
이에 따라, 고려는 동여진을 몰아내고,
강동 6주를 설치하여 그 영토를 압록강까지 확장시켰다.
- (2차) 1010년, 요 성종의 직접 침임
요나라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하였다.
당시 고려는 "강조"라는 자가 있었는데,
이 자가 목종을 폐위해버리고 조정을 장악한다.
이를 강조의 정변이라고 하는데,
요나라는 강조의 죄를 묻는다는 이유로,
고려를 침입하게 된다.
그러나, 역시 이 때의 진정한 의도는
고려와 송나라와의 관계를 완전히 막아
강동 6주를 되찾으려는데 있었다.
이 때에도 항복론이 있었으나,
강감찬의 반대로 당시 현종은 나주로 피신!
고려는 2차 전쟁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
- (3차)1018년, 소배압의 침입
현종이 거란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강동 6주를
반환하라는 요구에도 응하지 않자,
요나라 소배압이 10만 대군으로 다시 고려를 침공!
그러자 고려는,
강감찬을 중심으로 20만 대군을 준비함!
특히, 흥화진 전투에서 기병을 매복하여
거란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 이후에도 거란군은 후퇴하지 않았으나,
고려군의 수차례 공격으로 결국 퇴각하였다.
도망가는 거란군을,
강감찬이 귀주에서 섬멸하였는데,
이를 귀주대첩이라고 한다.
(귀주는 지금의 평안북도 구성시)
그 당시 10만군 중 2천명만 살아서 돌아갔다.
이후 요나라는 고려 침약에 실패하여
지배권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고려가 있는 한 요나라 입장에서
송나라를 쳐들어 갈 수 없게 되었다.
이후, 요나라는 1125년 멸망하게 된다.
고려는 철저하게 국익과 현실에 부합하는
실용적인 외교 정책을 구사한 것으로 보인다.
상호 대등한 관계도 굴종하는 속국 관계도 아닌,
대국을 상국으로 인정하고 받들어 주면서
실리를 추구하고
때로는 상국을 상대로 결연한 태도를 보이는 등,
상호 공존하는 정상적인 사대 - 조공 관계를
수립한 것이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어떨까?
과연 대한민국의 국정운영은 실리를 찾아가고
있을까..?